RPS 전환이 가져올 에너지 시장의 거대한 변화
대한민국 재생에너지 시장은 2026년 현재 커다란 변곡점에 서 있습니다. 지난 십여 년간 시장을 지탱해온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제도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정부 주도의 ‘계약시장’ 체제로의 RPS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국회의 심의와 의결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만, 만일 RPS 제도가 폐지된다면 이는 단순한 행정적 절차의 변경을 넘어 시장의 작동 원리 자체가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장의 실무자들과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RPS 전환을 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과거 RPS 체제에서 발생했던 REC 가격의 극심한 변동성을 줄이고, 장기적인 투자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조금 더 냉정합니다. 제도의 변화가 실제 발전단가 하락으로 이어지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입니다.
제도 변화의 핵심: 왜 지금 계약시장인가?
기존 RPS 제도는 발전 사업자가 시장에서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를 판매하여 수익을 보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 따라 가격이 널뛰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RPS 전환의 핵심은 정부가 물량을 공고하고 사업자가 입찰하는 ‘경매 및 계약’ 방식으로 바꾸어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있습니다.
결국 정부는 가격의 변동성을 통제함으로써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조절하고, 국민의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겠다는 계산입니다. 그러나 전문가의 시각에서 볼 때, 시장의 자율성이 억제된 상황에서 민간의 창의적인 기술 혁신이 가격 하락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습니다.
발전단가 하락의 딜레마: 수치로 보는 현실적 한계
최근 분석에 따르면 RPS 전환이 이루어지더라도 재생에너지 발전단가(LCOE)의 유의미한 하락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합니다. 실제로 2026년 기준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의 원자재 가격과 금리 변동성을 고려할 때, 계약시장에서 형성되는 낙찰 가격이 과거 RPS 체제의 평균 수익보다 크게 낮아지기 힘든 구조입니다.
정부는 경쟁 입찰을 통해 단가를 낮추려 하지만, 사업자 입장에서는 토지비, 인허가 비용, 계통 접속 비용이라는 ‘3대 고정비’가 줄어들지 않는 한 입찰가를 낮추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해상풍력의 경우 MW당 투자비가 2020년대 초반 대비 약 15~20% 상승한 상황에서, 단순히 제도만 바꾼다고 단가가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LCOE와 입찰 가격의 괴리: 전문가가 본 시장의 우려
현장에서 마주하는 가장 큰 문제는 균등화발전비용(LCOE)의 불확실성입니다. 정부가 제시하는 계약 가격의 상한선이 실제 사업자의 손익분기점을 밑돌 경우, 시장 참여 자체가 저조해질 수 있습니다. RPS 전환 이후의 계약 시장이 자칫 '부실 사업자 양산'이나 '사업 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데이터를 살펴보면, 최근 3년간 국내 태양광 입찰 시장의 낙찰률은 소폭 하락하는 추세이나, 이는 기술 발전보다는 출혈 경쟁의 결과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비용 효율화가 아닌, 제도의 강제성에 의한 단가 인하는 장기적으로 유지 보수(O&M) 부실과 발전 효율 저하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위험이 큽니다.
에너지원 쏠림 현상과 계통 안보의 숙제
RPS 전환 과정에서 또 다른 쟁점은 특정 에너지원에 대한 쏠림 현상입니다. 계약시장은 효율성과 가격 경쟁력을 우선시하므로, 상대적으로 단가가 저렴한 특정 원천에만 물량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국가 전체의 에너지 믹스 균형을 깨뜨리고 전력 계통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 발전 설비가 집중되는 현상 또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현재 호남권과 영남권의 계통 포화 상태는 신규 사업 진입의 가장 큰 벽입니다. RPS 전환이 이러한 지리적, 계통적 한계를 해결하지 못한 채 가격 중심의 계약으로만 흐른다면, 발전기를 지어놓고도 전기를 보내지 못하는 출력 제어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이미 제주도와 일부 남부 지방에서 발생하는 출력 제어 횟수는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습니다. 계약 시장으로의 전환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보상 기전이나 지역별 차등 가격제를 포함하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개편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는 제도 변화는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질서 있는 퇴장과 새로운 도약, RPS 전환의 성공 조건
결론적으로 RPS 전환은 우리 재생에너지 산업이 성숙기로 접어들기 위한 필수적인 진통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낮은 가격'에 매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업자가 적정한 수익을 확보하면서도 기술 혁신에 투자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계약 구조'가 설계되어야 합니다.
또한, 계통 접속의 투명성을 높이고 인허가 과정을 간소화하는 등의 비정성적 비용 절감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시장 참여자들에게 명확한 시그널을 주어야 하며,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하여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제는 양적 팽창이 아닌, 질적인 내실을 기해야 할 때입니다.
15년 전 처음 현장에서 느꼈던 재생에너지의 열망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번 RPS 전환이 부디 산업 생태계를 위축시키는 족쇄가 아니라, 글로벌 탄소중립 경쟁 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갖추는 마중물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